2019 홈리스추모제 권리선언

 

우리는 거리와 시설, 쪽방, 고시원 등지에서 죽음을 맞이한 홈리스를 함께 기억하고 추모한다. 하지만 우리의 추모는 죽음을 수용하고 다시 세상을 살자는,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홈리스로 살게 하는 조건에 눈 감는 세상, 홈리스의 존재를 부정하는 세상, 자립과 자활만을 강요하는 세상, 부실하고 불충분한 지원만을 내세우는 세상이야말로 홈리스를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원인임을 우리는 안다. 그렇기에 우리의 추모는 멈출 수 있는 죽음을 멈추게 하지 않는 세상에 반대하고,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삶은 물론 죽음조차 존엄할 수 없었던 떠나간 동료들을 추모하며, 존엄이 박탈된 삶과 죽음을 당연시하는 세상을 더 이상 용인하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하나.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권리, 추모와 애도를 누릴 권리를 보장하라.

어떤 삶을 살았건, 존엄을 지키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해선 안 된다. 어떤 삶을 살았건, 애도와 추모의 권리를 박탈당해선 안 된다. 마지막 인사조차 충분히 나눌 수 없고, 언제 어디서 왜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현실은 바뀌어야만 한다.

 

하나. 집다운 집에 살 권리를 보장하라.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더 나은 주거를 원하는 사람을 내몰지 마라. 자립과 자활을 앞세워 쾌적한 집, 안전한 집, 집다운 집에 살 권리를 막지 마라. 사람은 거리가 아닌, 시설이 아닌, 방이 아닌 집에서 살아야 한다.

 

하나. 제 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

가난하다고 해서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해선 안 된다. 가난하다고 해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선 안 된다. 건강을 악화하고 죽음을 가깝게 만드는, 이윤만을 위한 의료를 이젠 멈춰야 한다.

 

하나.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라.

공공기관이 자행하는 혐오와 멸시를 멈춰라. 삶의 유지에 필요한 행위에 무질서라는 낙인을 부과하지 마라. 원치 않는 것을 요구하지 말고, 삶의 유지에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때 조건을 붙여 희롱하지 마라.

 

거리에 머문다는 이유로 검문과 처벌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폭력이다. 불법적이고 약탈적인 치안행정을 멈추고, 명의범죄를 비롯한 각종 범죄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라.

 

열악하고 부족한 복지지원조차 여성이 닿기에는 버겁다. 여성에게 필요한 적절한 지원을 제공하고, 원하는 공간에서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

 

20191222

홈리스추모제 추모 발언자 및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