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적지원으로 생계형 가계부채 탕감해야

[기고] 서민정책 없는 금융소외자 지원책

이혜경(금융피해자 연대 해오름)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11년인 작년 말 세계적인 경제위기 상황을 한국도 피해갈 수 없었다. 다시 IMF의 악몽이 10년 만에 되풀이 되는 것인가에 대한 우려는 1년 만에 없어진 듯하다. 그러나 이 모습 역시 10년 전 IMF 조기졸업을 자축하던 상황과 흡사해 보인다. IMF는 조기졸업 했지만 IMF 외환위기의 대가로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라는 한국의 지각변동으로 민중의 10년간 삶은 빈곤의 심화였다. 그러나 빈곤은 철저하게 개인에게 떠넘겨졌고 신용카드의 온갖 규제완화로 민중들은 10년간 그 명을 이어왔다. 하지만 IMF 권고로 1998년 이자제한법(25% 이자상한) 폐지로 민중들은 평균 200%가 넘는 고금리 또한 감당해야 했고 빈곤과 금융채무라는 악순환 속에서 매일매일 줄타기하며 연명해왔다. 또한 빚진 죄인, 도덕적 해이자라는 사회적 누명을 쓰고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추심까지 감내해야 했다. 이러한 과정은 현재 830만 금융소외자를 양산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 사망률 5년 연속 1위라는 불명예를 가지는 안타까운 현실을 만들어낸 것이다.

10년만의 정권교체는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민중들의 한 가닥 지푸라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춘몽이었고 악몽 같은 현실은 더욱 민중들의 삶을 옥죄고 있다.

절망을 반복하는 이명박 정부의 금융소외자 지원책

경기부양책의 예정된 결말이 곧 드러날 테지만 이명박 정부는 친서민정책을 내놓으며 연초의 고전을 모면한 듯하다. 그러나 친서민정책의 이면은 기만적이기 짝이 없다. 미소금융재단, 보금자리주택, 취업 후 상환제도 등은 서민정책을 표방하고 있지만 빈곤층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서민’은 더 이상 과거의 ‘서민’이 아니다. 7~10등급에 해당하는 830만 금융소외자 지원책 또한 그러하다. 지난 9월 발표한 이명박 정부의 금융소외자 지원책은 2년 전 대선 당시 500만원 이하의 생계형 채무자에 대한 원금탕감은 커녕 ‘원금탕감은 절대없다’는 대전제 하에 시작된다. 다양한 금융소외자 지원책을 내놓은 것 같지만 일관되게 채무변제를 요구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은행연합회가 만든 신용회복위원회가 자리 잡고 있다. 이 또한 변제능력이 어느 정도 있는 계층만을 염두해 두고 있으며 1000만원 아니 100만원 이하의 채무도 갚기 어려운 절대빈곤층은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금융채무 불이행자가 210만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며 이명박 정부의 금융소외자 지원책의 성공을 떠들어대지만 이는 개인워크아웃, 프리워크아웃, 신용회복기금 등의 대대적인 선전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다. 8년간 변제해야 하는 이 제도들은 10년 동안 이미 실효성 없음이 드러났었다.

이는 금융채무(자)의 문제를 IMF 이후 심화된 빈곤의 문제로 바라보지 못하는 낡은 사회적 인식에 기인한다. 하여 1962년부터 제도적으로 만들어진 파산제도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조차 도덕적 해이자라는 주홍글씨를 만들고 있다. 오히려 유일한 채무탕감제도인 파산제도를 보수화하고 있다. 2006년 파산신청자가 12만명을 넘자 2007년초 법원은 내부업무처리방침을 마련하여 1500만원 이하의 채무자, 20~30대 청년채무자들의 파산심리를 강화하여 파산신청의 장벽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작년 세계적인 경제위기 상황에서 외국의 경우 파산신청율이 30%이상 증가했지만 한국은 이례적으로 파산신청율이 감소를 하였다.

가계부채는 IMF 이후 빈곤의 문제, 생계의 문제다

전반적으로 채무불이행자는 감소하고 있지만 소액 채무불이행자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6월말 1000만원 이하 소액 채무불이행자는 115만4880명(금융채무불이행자의 55% 수준)이다. 이는 지난해 말보다 8,658명 늘어난 수치로, 이 중 100만원 미만의 금융채무불이행자도 26만2천233명이다.

금융위원회 실태조사(2008.6.3)에 따르면 사금융 이용자의 사금융 이용 계기는 가계 생활자금(47.4%)과 사업(39.6%)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가계 생활자금 용도로는 긴급 생활비(46%), 교육비(24.5%), 병원비(14.9%) 등이었다. 사금융 이용 금액도 200-500만원 수준이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 1000만원 이하 채무자 비율이 전체 사금융이용자의 약 70%에 이르는 것을 보면, 생계 때문에 소액의 급전이 필요하여 사금융 시장을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채무자들의 채무를 지게 된 원인, 채무를 갚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도덕성을 의심하지만 채무액의 규모와 채무발생원인, 사용처 등의 여러 조사결과에서도 현재 가계채무는 IMF 외환위기 이후 빈곤이 심화되면서 초래된 생계형 채무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현재 채무자들의 대부분이 빈곤층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친서민’을 이야기하며 철저하게 빈곤층을 배제하고 절대빈곤층에게 조차 채무변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과 재벌에겐 아낌없이 주련다, 공적자금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금융사에게 168조 5천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였고, 그 중 회수율은 50% 수준이지만 아무도 기업에게 ‘도덕적 해이’를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구조조정기금이라는 이름의 탈을 쓴 공적자금을 추가로 투입하기로 함으로써 10년 전의 상황을 그대로 재현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지난 4월 40조 원 규모의 공적자금 투입을 국회에서 통과시킨 것이다. 즉 구조조정기금은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매입과 구조조정 중인 기업의 부동산 매입 등에 쓰이며, 기금 재원은 정부보증 기금채권을 발행하기로 하였으며 구조조정기금채권을 발행하기 위해 정부는 총 40조원 한도로 기금채권을 발행할 수 있는 채무보증동의안을 확정하였다.

그러나 115만명의 1000만원 이하 채무를 해결하는데 3000억원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지만 절대빈곤층인 이들에게조차 일관되게 채무변제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금융채무자들은 도덕적 해이자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최대피해자이다. 날로 증가하는 금융채무와 금융채무자 문제의 본질은 빈곤과 고금리이다.

빚진 죄인이라는, 도덕적 해이자라는 생각으로 숨죽이며 기본적인 삶의 권리조차 빼앗기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 당당하게 빼앗긴 금융피해자들의 권리와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가기 위한 금융피해자들의 목소리와 행동으로 IMF 10년을 끝장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의 10년은 도덕적 해이자라는 올가미를 쓰고 더욱 심화된 빈곤과 금융채무의 늪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모든 억압받고 착취받는 민중들의 연대와 행동으로 IMF 10년을 끝장내고 민중들의 희망찬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 빈곤과 금융채무의 사회적 책임을 이제는 말해야 한다.

생계형 가계부채 탕감을 위한 요구

830만 금융채무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원금탕감 없다’는 원칙이 아닌 ‘생계형 가계부채 탕감’이라는 원칙하에 금융소외자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의 가계부채 수준은 위험한 수준이라고 경제전문가도 주장하고 있다. 또한 이는 IMF이후 기업의 구조조정, 카드사의 카드남발, 정부의 이자제한법 폐지로 인한 고금리 등 정부와 자본의 합작품이라는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는 830만 금융채무자의 문제를 IMF 이후 빈곤의 문제로 바라보고 정부의 공적지원을 통해 해결해야 함을 의미한다.

소액채무자, 수급자 등에 대해서는 공적자금을 통해 채무를 탕감하고 그 이외의 채무자들에게는 개인파산, 개인회생등 공적지원제도의 문을 넓혀 활성화함으로써 금융채무(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1) 830만 금융채무자에 대한 면밀한 실태조사와 공적자금 지원으로 채무탕감

① 파산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는 생계형 소액채무자의 채무 탕감

6월말 금융채무불이행자 210만명 중 1000만원 이하 소액 채무불이행자는 115만4880명, 이 중 100만원 이하 소액채무불이행자도 26만명 수준이다. 다른 여러 자료들에서도 신용불량자의 상당수가 소액채무자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파산제도의 사각지대에 있어 채무를 해결할 길이 없다.

소액채무이니 개인워크아웃, 신용회복기금 등의 채무변제 프로그램을 통해 해결하면 되지 않겠나 싶겠지만, 이들은 소액채무임에도 불구하고 변제할 수 없을 정도로 절대빈곤층에 놓여있는 상태이다. 이들의 경우 파산제도가 아닌 사회안전망 차원에서 채무의 원금탕감이 이루어져야 한다. 평균 채권 매매율인 5% 수준으로 정부가 채권을 매입한다면 3000억원도 들지 않는다.

② 수급자에 대한 채무 탕감

수급자의 경우 생계비에도 못미치는 급여를 받고 있어 채무를 변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여 빚으로 빚을 갚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기초생활보장법이 진정 수급자의 자활을 지원하고자 한다면 채무변제 유예가 아니라 수급자에 대한 즉각적인 채무의 원금탕감이 이루어져야 한다.

③ 신용회복기금이 공적지원체계로 거듭나야

신용회복기금은 개인워크아웃과 한치도 다를 바 없는 제도로, 8년간 원금만 나누어 변제토록 하고 있음. 신용회복기금의 채권매입가격이 10% 정도로 생각되는데 10% 정도로 사들인 채권을 채무자들에게는 100%를 변제토록 하고 있어 정부가 채무자들을 상대로 엄청난 폭리의 채권장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작년 9월 출범한 신용회복기금은 현재 매입한 채권의 평균 매입가, 회수규모 등등에 대해 내용을 공개하고, 채무자들을 상대로 한 채권장사를 중단하고 수급자 이외의 채무자들에게 채권매입액 내외에서 변제토록 하여야 한다.

④ 은폐, 축소 등 미봉책이 아닌 근본적 해결을 위한 면밀한 조사와 정보 공개

신용불량자 용어 삭제, 언발에 오줌누기식 금융소외자 정책이 아니라, 현재 830만 금융채무자들의 실태조사(채무와 관련된 상황, 생활 및 소득수준 등)와 각각의 상황에 적합한 대책과 재정 계획등이 고민되어져야 할 것이다.

2) 법원의 내부업무처리방침 철회와 개인파산 등 공적제도 활성화

1500만원 이하 채무자, 20~30대 청년 채무자에 대한 파산심리 강화, 판사의 재량면책권 축소 등 법원의 내부업무처리방침 철회를 통해 파산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 이와 같은 기준들은 그 근거를 찾아보기 힘들며 오히려 현재 경제적인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즉 현재 채무자들이 빈곤층이라는 상황, 청년실업의 문제, 노동빈곤층의 문제 등의 상황들이 고려된다면 이와 같은 기준들은 없어져야 한다. 근거없는 기준을 830만 금융채무자에게 천편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아닌 개인의 재산, 소득 여부, 장애, 연령 등을 종합해 개인회생ㆍ파산 허가 여부를 판단해야 합리적인 법집행일 것이다.
개인회생 제도의 문턱 낮추기, 개인파산제도의 면책자 차별 금지, 보증인 동시면책, 조세의 면책 등의 문제 또한 시급하게 개정되어야 한다. 하여 채무로 인해 발목잡혀 절망하며 생활하고 있는 830만 채무자들에게 개인회생, 개인파산제도가 새로운 삶의 기회를 부여하는 제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1121 금융피해자 행동의 날
● “생계형 가계부채 탕감의 사회적 의미와 방향” 토론회
2009년 11월 20일 금요일 12:00~14:00 / 의원회관 104호

● 생계형 가계부채 탕감을 요구하는 금융위원회 면담 및 금융피해자 증언대회
2009년 11월 20일 금요일 15:00~16:00 / 금융위원회

● 생계형 가계부채 탕감 1121 금융피해자 결의대회
2009년 11월 20일 금요일 16:30~17:30 / 국회 앞

■ 주관 : 금융채무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연석회의(금융피해자 파산지원연대, 금융피해자 연대 해오름, 빈곤과차별에저항하는인권운동연대, 좋은모임회, 홈리스행동(준), (참관)새길민생상담소), 생계형 가계부채탕감 공동행동

■ 주최 : 금융채무의 사회적 책임을 위한 연석회의, 생계형 가계부채탕감 공동행동, 면책자클럽, 민주노동당, 빈곤사회연대, 빈곤문제연구소, 전국빈민연합, 진보신당
■ 후원 : 금융경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