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지원체계 통합 철회를 규탄한다

- 노숙인․부랑인 분리의 비상식적 행정운영 작태를 즉각 철회하라 -

 

우리사회의 심각한 주거문제가 누적되어 나타난 홈리스 문제의 심각성은 더 이상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부랑인복지시설이나 노숙인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쪽방, 고시원, 역사, PC방이나 찜질방 혹은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과 같은 다중이용시설, 심지어 길거리에서 생활하고 있는 극단적 주거취약계층의 생활위기는 점점 더 가중되어 가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의 홈리스 문제에 대한 대처노력은 체계적이지 못했다. 빈곤에 대한 최후안전망이며 대표적 정부정책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역시 일정한 주거지를 갖지 못한 홈리스에게는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부랑인 복지체계와 노숙인 복지체계가 이원화되면서 홈리스들에게 복지서비스는 제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동일한 복지욕구를 가진 홈리스가 노숙인 복지체계와 부랑인 복지체계 중 어느 쪽에 접근하느냐에 따라 받게 되는 사회복지서비스는 전혀 다르다. 이 두 체계 사이의 연계성은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노숙인 복지사업은 지방이양사업이고 부랑인 복지사업은 중앙정부사업이다. 사업의 주체마저도 다르게 설정되어 있다. 홈리스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와 같은 분리가 부적절하고 결과적으로 홈리스에 대한 복지서비스의 수준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개선은 상당히 오랜기간 동안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불행히도 이에 대한 개선은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못했다. 몇 년 간에 걸친 정책협의나 민관토론 과정 등을 거쳐 노숙인-부랑인 이원체계를 홈리스 지원체계로 단일화하는 방안이 논의되어 왔다. 그리고 몇 가지 경로를 통해 정부(복지부)는 체계 단일화를 포함하는 법적 개선이 있을 것임을 밝혀 왔다. 이 체계 단일화는 기존의 노숙인, 부랑인 개념이 가지는 낙인과 한계 때문에 국제적으로 극단적 주거취약계층의 문제에 대응하는 지칭개념으로 사용되곤 하는 홈리스 개념을 활용하는 것으로 이야기되었다. 정부는 관련 민간단체와 협의를 진행하며 홈리스 지원체계로의 단일화를 전제로 민간의 협력을 구하는 일도 많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사회복지사업법이나 관련 법령 및 규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존의 노숙인과 부랑인의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고 이에 따라 노숙인과 부랑인에 대한 지원체계 통합이 어려워질 것으로 정부의 입장이 바뀌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그 주된 이유가 어처구니 없게도 노숙인과 부랑인을 아우르는 표현인 홈리스가 외래어라는 것이다. 그리고 법제처와 일부 한글단체가 외래어 사용을 반대한다는 것이다. 광범위한 주거취약계층과 그 극단적 형태로서의 홈리스 생존권과 직결된 제도와 정책 논의에서 외래어 사용여부나 대안적 표현을 찾는 것이 한 국가의 보호체계를 구축하는 것에 우선한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 외래어 사용을 피하기 위해 원래의 두 용어를 모두 병기하겠다고 한다. 그럴 경우 기존의 지방이양사업인 노숙인 복지체계와 중앙정부사업인 부랑인 복지사업에 대한 원래 명칭이 모두 사용되면서 실질적으로 그 내용적 분리가 극복되는 것에 장애가 초래될 것이 분명하다. 법제처 등 정부에서는 기존의 법령과 정책이 가진 모순점의 내용을 극복하는 것은 등한히 하고 있다. 정부가 용어 표현에 대한 일부 반대에 대해 반응하는 민감성의 일부분만큼이라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잘못된 정책내용 개선에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면 현재와 같은 모순투성이 정책 이원화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홈리스 지원체계 개편과 관련하여 나타난 일부 한글단체들의 행태도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이들은 그간 ‘뉴타운’, ‘주민센터’, ‘디자인서울’, ‘한강르네상스’, ‘옴부즈만’ 등 각종 정책 용어에 한글이 아닌 것이 쓰일 때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했다. 아마 심기를 건드릴까 두려워 가급적 ‘대충’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유독 이번의 ‘홈리스’ 용어에 대해서는 그 사용 이면의 아무런 내용과 맥락도 확인하지 않은 채 무작정 반대만 하고 나서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권력이 있는 계층의 외래어 사용 의지에는 상대적으로 눈을 감다가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복지상황과 관련된 외래어 사용은 본인들의 한글운동 입장을 알릴 호기로 삼는 듯하다. 그간의 노숙인과 부랑인 정책 분리로 인해 우리사회 가장 취약한 계층이 경험한 생존위기는 안중에 없다는 태도이다. 그들의 논리가 결국은 몇몇 정부 부처로 하여금 몇 년 간에 걸친 제도개선 민관협의를 회피할 수 있는 면죄부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쯤은 얼마든지 감수하겠다는 태도이다. 어쩌면 사회취약계층의 복지 정책을 디딤돌로 밟고서 유력한 지자체 및 정부부처들과 내면적 협력관계를 가지게 된 것을 좋은 계기와 실적이라며 기뻐하고 홍보할지도 모른다. 이들에게 시민운동이 가지는 최소한의 건전한 반성적 태도를 기대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90년대 말부터 우리사회에 심각하게 대두된 홈리스 문제의 양상에 대해 적절한 우리말 표현 하나 제시하지 못한 한글단체들이 무작정 외래어 사용을 막자면서 보인 이번의 행태는 엄중히 규탄 받아 마땅한 것이다. 이번 과정을 통해 홈리스 지원체계 개편을 반대하는 구실을 제공하는데 앞장선 한글단체들은 앞으로 우리사회의 빈곤운동단체와 기층 민중들로부터 그 어용성에 대해 심각한 비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홈리스에 대한 이원적 복지체계 통합이 지연되는 것에 대해 마땅한 용어가 없다는 궁색한 변명을 제기해서는 곤란하다. 한글단체의 문제제기라는 부적절한 이유를 대며 홈리스 지원체계 통합을 기피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책 주체의 모습이 될 수 없다. 만약 정부가 홈리스의 주거취약 문제에 대한 사회적 책임성을 조금이라도 자각하고 있다면, 비합리적이기 짝이 없는 부랑인․노숙인 개념 병기를 철회하고 정책분리를 극복하는 통합정책 추진의 의지를 분명히 보여야 할 것이다.

 

2010년 5월 17일

홈리스 행동

성명서(노숙인지원체계통합철회-0517).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