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사회연대 2008-05-30 16: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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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주먹구구식 선심행정에 에너지 기본권 실종

- 5.28 정부의 에너지 바우처제도 도입 결정에 부쳐


정부는 지난 5월 28일 열린 고유가 대책 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엄청난 유가 상승으로 고통받는 빈곤층을 위해 에너지 바우처(쿠폰)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2005년 촛불을 켜두고 잠들었다 숨진 여중생 사건이 발생하면서 단전단수로 인한 빈곤층의 고통이 세간에 알려진 바 있다. 2006년 발표된 ‘단전단수 등으로 인한 인권 상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 한 해 동안 단전을 하루 이상 경험한 가구는 48만 가구가 넘는 것으로 나타나 약 156만 명 이상이 단전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에너지 바우처 제도의 시행방안에 대해 정부가 아직 구체적으로 언급한 바는 없지만 지난 시기 정부가 단전가구에 대해 취했던 조치를 본다면 그 한계를 직감할 수 있다. 2005년 단전 조치로 인한 사망 이후 산업자원부와 한국전력에서는 혹서 혹한기 3개월 단전 조치 금지를 발표했고, 3개월 이상 전기 요금 체납 가구에 대해서는 110와트(W) 전기 사용(순간 전력 사용을 기준으로)을 가능하게 하는 소전류제한기를 보급한 바 있다. 그러나 소전류제한기는 단지 형광등 3개와 14인치 텔레비전 1대를 사용할 수 있을 용량일 뿐이었고, 실제 소전류제한기를 부착한 경험이 있는 전국의 256가구 중 163가구가 일주일 이내에 전류제한기를 철거했다. 이후 산자부는 전류제한공급량을 220와트로 늘렸으나, 이는 냉장고 한 대가 더 추가되는 셈에 불과했다. 화장실 불 한 번 켜면 끊어지는 전기공급량을 갖고 어둠 속에서 숨죽이며 살아가라는 것이 빈곤층에 대한 에너지 지원책인 셈이었던 것이다.


그나마 전력은 99% 보급되고 있고 형평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난방 등에 필요한 다른 에너지원의 경우 접근성 자체가 보장되어 있지 못하다. 도시가스의 경우 보급률이 90%에 이른다고 하지만 소도시, 농어촌 지역에 대한 보급은 미미하고 일반 주택, 오래된 아파트 등 빈곤층 밀집 지역의 공급 비율은 현저히 낮다. 빈곤층이 주로 활용하는 에너지원은 등유나 프로판 가스 등인데 올해 약간 인하되기는 하였지만 2000년 이후 등유와 프로판에 부과되는 특소세는 급속히 상승해 지역난방이나 도시가스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가격을 유지해왔던 문제를 안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통합적인 에너지 지원계획을 수립하여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지금 정부는 각각의 에너지 산업의 사유화 정책에만 고심할 따름이다.  


이명박 정부는 발전, 가스 등의 에너지 산업 분야를 전면 개방화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미 에너지 산업 전반의 수직계열화 및 통폐합이 일어나고 있으며, 분할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빈곤층에 대해 에너지 사용요금의 일부만을 지원하는 바우처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꼴이다. 바우처 제도를 도입하기 이전에 현재 실행 중인 빈곤층/장애인 전기요금 할인제도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2006년 에너지재단을 설립하여 에너지 기본권 확립에 대한 재정투여를 하겠다고 했지만  전력산업기반기금이 매년 2조원씩 쌓여 있는 상황에서 저소득층 전기요금 지원액에 2005년 1억 7천9백만 원에 그치고 있다. 정부가 대안으로 내세운 ‘바우처’는 2007년부터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널리 시행되고 있는데, 이는 이 분야의 시장 형성을 위한 선별적이고 한시적인 지원조치로 기능하고 있다. 더구나 안정적인 기금 운용에 대한 계획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산 논리에 따른 불안정성은 불 보듯 뻔하다. 결국 에너지 바우처제도 도입은 공공성을 포기한 에너지 사유화 정책을 합리화하고 생색내기 지원 정책으로 빈곤층의 불만을 관리하는 전략에 불과하다.


그동안 많은 노동사회단체들은 에너지 기본권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에너지 산업을 시장가치에 내몰고 빈곤층에 대한 한시적인 지원을 하는 방식으로는 에너지 기본권을 결코 실현할 수 없다. 지속 가능한 미래, 보편적인 에너지 접근권과 공공적인 에너지 활용과 환경에 대한 민중적 통제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보편적이고 대안적인 에너지 활용을 위해 우리 노동시민사회단체, 반빈곤운동단체들은 에너지 바우처가 아니라 에너지 기본권을 주장한다. 또한 에너지 사유화가 아니라 에너지 공공성을 주장한다. 이명박 정부는 에너지 사유화 방침을 철회하고 에너지 기본권 실현을 위한 정책 마련에 나서야 할 것이다.  


2008년 5월 30일


빈곤사회연대 

(관악주민연대, 광진주민연대, 노동자의힘, 노들장애인야간학교, 노숙당사자모임한울타리회.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 문화연대, 민주노동당, 민주노동자연대, 민주노총,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민중복지연대, 사회진보연대, 서울경인사회복지노동조합, 성공회나눔의집협의회,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신용사회구현시민연대, 위례복지센터, 장애여성공감, 장애인실업자종합지원센터,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빈민연합, 전국실직노숙인종교시민단체협의회, 전국자활노동조합, 전국학생행진, 정태수열사추모사업회, 주거권실현을위한국민연합, 주거권실현을위한비닐하우스주민연합. 중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옥란열사추모사업회, 피노키오자립생활센터,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빈곤문제연구소, 한국사회당, 한국자립생활네트워크. 한국지역자활센터협회, 향린교회)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민주노총 전국공공서비스노동조합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경계를 넘어

동성애자인권연대

인권운동사랑방

천주교인권위원회

한국HIV/AIDS감염인연대'KAN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