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고’라는 2010년 복지예산안을 파헤쳐 보니!


   ‘중도실용, 친서민정책’을 표방하고 있는 정부가 지난 9월 30일 ‘민생안정, 미래도약을 위한 2010년 예산·기금안 주요내용’을 발표했다. 전체 지출규모는 올해 본예산 284.5조원에 비해서는 7.3조원(2.5% 증가)이 증가하였지만 추경예산안 301.8조원에 비해서는 10조원(3.3%감소)이 줄어든 291.8조원에 달한다. 이 중에서 복지지출은 81조원으로 2009년 본예산 74.6조원에 비해 6.4조원(8.6%)이 늘었다고 발표되었다. 2009년 추경예산안(80.4조)에 비해서는 0.6조원(0.7%증가)이 늘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복지지출 증가율이 예산증가율의 세배에 달하며, 총 지출 중 복지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역대 최고 수준’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10월 2일 행한 라디오 연설에서 이를 되풀이하여 강조하였다. 보건복지가족부 역시 마찬가지이다. 복지지출 중 보건복지가족부 소관 재정규모는 31.06조원으로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역대 최고수준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사상 최고’라는 자화자찬에도 불구하고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리 환영할 만하지 않다.


1. ‘사상 최대’라는 복지지출은 허장성세(虛張聲勢)일 뿐이다.


   정부는 복지지출이 전체 예산증가율의 3배이고 비중도 사상최대라고 되풀이하여 강조한다. 하지만 이는 복지지출이 늘어나서라기 보다는 다른 분야의 증가율이 떨어졌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올해 복지지출 증가율 8.6%는 노무현 정부시절 평균증가율 10.1%에 못 미친다. 그리고 추경예산안에 비해서는 0.7%증가에 그쳐 물가상승율 3%를 감안하면 사실상 삭감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보건복지가족부 소관 예산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당초에 보건복지가족부가 제출한 예산보다 줄어든 것인데, 지난 7월 보건복지가족부는 총규모 20조 5357억원(기금제외), 전년 대비 6.6%를 제출하였다. 그런데 이보다 삭감된 19조 4045억원으로 확정했다. 이는 2009년 추경을 포함한 예산 19조 7100억원과 비교하면 1.5%, 3055억원 줄어든 것이다. 2008년 36.6%, 2009년 10.9%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거꾸로 사상 최대로 감소한 셈이다. 곽정숙 의원실에 따르면 특별회계를 제외한 일반회계 기준으로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고 한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보건복지가족부 일반회계 예산의 연평균 증가율은 21.7%에 달했는데, 2010년 예산은 0.8%, 1471억원이 감소했다는 것이다. 지난 5년간 한번도 감소한 적이 없었는데, 사상 처음으로 줄어든 것이다.

늘어났다고 하는 내역을 살펴보더라도 정부의 ‘사상최대’라는 자랑의 허장성세가 드러난다. 늘어난 예산에는 제도시행에 따른 국민연금 1조5천억을 포함한 공적연금 2조2천억, 기초노령연금 0.3조원, 건강보험 0.2조원, 실업급여 0.2조원 등이 3조원가량을 차지한다. 그리고 융자성 사업이라 복지지출로 보기하기 힘든 보금자리주택 2.6조원이 포함되어서 이들을 합한 것이 5.6조원으로 늘어난 6.4조원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사실상 250여개에 달하는 다른 복지사업예산은 거꾸로 5조원 정도가 삭감된 것으로 보여진다. 기초생활보장예산은 수급자수가 2009년 158만 6천명에서 2010년 163만2천명으로 늘리고, 예산도 7조1355억원에서 7조2930억원으로 1575억원 늘었다고 하나, 이는 기만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최저생계비가 2.7%인상되어 이에 해당하는 액수를 감안하면 수급자수의 증가는 거의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서 경제위기시 한시적 생계지원사업예산은 전액 삭감하였다.


2.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예산이 포함되었다.


   정부는 2010년 7월부터 중증장애인 연금을 신규 도입하고(33만명,1474억원) 중증장애인 활동보조(25천명, 1124억원 → 30천명 1,348억원) 및 장애아동 재활치료(18천명, 305억원 → 37천명, 508억원) 등의 예산을 편성하였다고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를 등록금 후불제 도입, 보금자리주택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친서민정책’으로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으로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에 해당하는 예산편성과 정책이다.

장애연금도입으로 인해 기존의 장애수당은 경증장애인만을 대상으로 지급되고, 중증장애인에 대한 수당은 연금으로 전환되는 데 기존 장애수당에 해당되는 금액이 1079억원에 달하여 신규로 투입되는 예산은 395억원에 불과하다. 그리고 장애인차량 LPG지원액 1100억원이 사라지고, 생계급여와 중복급여로 775억원이 줄어드는 예산을 빼고 나면 3천억원 정도가 새로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200여억원 정도가 늘어나는 것에 불과하다. ‘뻥 튀기’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내년에 도입이 예정되는 장애연금제도의 수급자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제외되고, 국민연금 가입자만 대상으로 되어 있어 실제 수급자는 전체 대상의 10%를 조금 넘을 것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게다가 기초자치단체별로 현재 5만원의 장애수당이 지급되고 있는데, 이것은 없애는 것으로 밝혀져 현재보다 실 지급액수가 줄어드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장애인연금’ 도입을 환영해야 할  장애계가 오히려 현행 장애연금도입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편 입만 열면 ‘친서민’을 강조하는 청와대가 오히려 다른 정부기관에 비해 장애인 고용이 더욱 후퇴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지난해 청와대의 장애인 고용률이 1.75%로 전년도보다 22.6%감소했다는 것이다. 현행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장애인을 소속 공무원 정원의 3%이상 고용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청와대가 먼저 법을 어기고 있는 셈이다.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지적에 의하면 43개 중앙행정기관 중 장애인고용률 3%를 달성한 기관은 9개에 불과하다.



3. ‘빚을 내서 정부의 복지정책을 누려라?’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1일 정례라디오 연설에서 "스스로 일어서려는 서민들에게 낮은 금리로 자금을 대출해줘 자활의지를 뒷받침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중도실용 서민정책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이번 발표한 예산에서도 이런 부분이 반영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도’이다. 현재는 학자금대출을 받는 경우 학기중에도 이자를 갚아야 하고, 소득 유무에 관계없이 일정기간이 지나면 상환의무가 발생하는 것에 비해 일정소득이 발생 이후에 빌린 돈을 갚으라는 것이다. 얼핏 생각하면 필요할 때 돈을 빌려주고, 갚을 능력이 있을 때 갚으라는 좋은 취지의 제도인 것처럼 비춰지고 당장 목돈이 필요한 이들은 이 제도의 시행으로 도움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정부가 이자의 차액을 감당한다 하더라도 예산의 지출과는 관계가 없는, 대출을 받는 이에게는 ‘빚’일 뿐이다. 정부도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하여 기준소득을 초과하는 금액의 일정비율을 매월 상환하게 할 예정이며, 대출연령을 제한하고 국세청을 통해 소득파악, 강제 징수 등을 통해 대출관리를 철저하게 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어쩌면 학생 때 빚을 지고, 졸업 후에도 이 빚을 갚다가 좋은 세월 다 보낼 수가 있다. 이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실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취업 후 상환하는 것과 더불어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록금을 줄이는 것이 병행되어야 한다. 실제 이 제도를 통해서 이득을 얻는 세력은 등록금 올리는 데에 부담을 덜게 된 대학당국과 이자로 차익을 얻게 되는 금융기관이 될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부는 이 제도의 시행을 발표하면서 동시에 차상위 계층에게 지급되었던 등록금보조예산을 전액 삭감하고,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연 450만원 지급되었던 것을 200만원으로 줄여버렸다. ‘병 주고, 약 주고’식 행태가 아닐 수 없다.

대표적인 친서민 정책으로 홍보하고 있는 보금자리주택도 알고 보면, 그 주택에 거주하고 싶은 이들한테 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대출을 해 주겠다는 것이다.

  

4. 이명박 정부의 ‘서민’에서 ‘빈민’은 제외?


   복지예산 증가액 6조 4천억원 중에서 2조 6천억원이나 차지하고 있는 보금자리주택의 주된 대상은 은행대출까지 포함해서 3-4억원 정도는 마련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정부가 보금자리주택을 시세의 50-70% 수준으로 싸게 공급한다고 밝혔지만 그래도 평당 천만원이 넘는다. 지금 전월세에 살고 있는 가구가 590만가구, 1600만명 정도라고 알려지고 있다. 이  중에서 보증금이 1억원 미만인 경우가 96%에 달하고, 3천만원인 미만은 67%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그나마 싸다고 알려진 보금자리주택도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런 상황인데 정부는 이를 복지지출에 포함시키고 있다. 이는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보편성이 생명이어야 할 복지지출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또한 선별적인 정책을 쓰고 있는 현 정부의 복지기조와 전략에 있어서도 그 대상자가 되어야 할 주거빈곤층과는 거리가 먼 정책이자 지출일 뿐이다.

또 하나의 친서민정책으로 홍보되고 있는 마이크로 크레딧의 일종인 ‘미소금융’의 대출대상에서도 금융채무불이행자와 개인파산자, 기초생활수급대상자는 대출대상에서 제외시켰다. 또한 앞에서 지적했다시피 ‘취업 후 등록금상환제’를 도입하면서 차상위계층과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주어졌던 등록금지원액도 없애거나 줄여버렸다. 이명박 정부의 ‘친서민정책’의 ‘서민’에서 ‘빈민’은 제외된 양상이다.


5. 무관심과 무기력을 틈타 없애 버려라?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높고, 경제회복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반영해서인지 주식, 부동산 값이 뛰어오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은 사상 최대의 매출 기록을 발표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가 회복되더라도 이는 수출대기업과 주식과 부동산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어느 정도 소득이 높은 이들에게 해당되는 얘기일 뿐이다. 경제위기 동안에 소득 하위 10%계층이 가장 타격을 많이 받았으며, 회복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고용은 늘어나지 않는 경기회복 현상은 여전하다. 청년층의 실업률도 줄어들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실업자의 재취업도 어렵긴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경기회복 기미를 틈타서 2010년 예산에서 많은 부분을 없애버렸다. 아직까지 세부내역이 다 밝혀지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것만 해도 다음과 같다.

· 사회적 일자리창출 지원금 : 325억원 삭감

· 장애아 무상보육 지원금: 50억 삭감

· 보육시설 확충비용: 104억원 삭감

· 장애인차량 지원비 : 116억원 삭감

· 건강보험 가입자지원금 : 568억원 삭감

· 학자금대출 신용보증기금 지원액 : 1천억원 삭감(반값 학자금 대출금리 인

하 묵살)

· 연탄 보조금 전액 삭감

· 서울시 독거노인 주말 도시락 보조금 - 전액 삭감

· 기초수급 생활자 의료비지원 540억 삭감

· 희망근로사업 2009년 26만명에서 2010년 10만명으로 축소

· 실직가정 생활안정자금대부사업 3000억원 삭감

· 한시생계구호사업 4181억원 삭감

· 긴급복지예산 1553억원에서 529억원으로 축소

·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원하는 연 450만원의 무상장학금은 200만원으로 후퇴

 차상위계층에게 주어지는 연 105만원은 없어짐.

· 일자리대책예산 추경예산안 12조 1199억원에서 8조 8407억원으로 줄어듬

· 결식아동급식 한시적 지원금 4억 3100만원 삭감

· 저소득층 에너지 지원금 902억 삭감

· 저소득층 월세 지원예산 60억 전액 삭감


구체적인 세부내역까지 공개되면 줄어들거나 없애버린 복지예산 목록의 수는 위에 언급한 것보다 더 늘어날 것이다.


이처럼 이명박 정부가 밝힌 2010년 복지지출을 뜯어보면 정부가 밝힌 ‘민생안정, 미래도약’과는 거리가 멀고, 빈곤층에게는 “생존불안, 미래암울”에 불과할 뿐이다.   


(참고자료)

- 민생안정, 미래도약을 위한 2010년 예산·기금안 주요내용. 기획재정부. 9. 28.

- 보도참고자료. 2010년 보건복지가족부 소관예산안 설명. 보건복지가족부. 9. 29.

- 민생·복지·교육·의료 예산증액을 위한 결의대회 자료집. 9. 29.

- 보도자료.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실. 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