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박근혜대통령의 ‘세모녀’ 언급에 대한 반박


박근혜대통령은 오늘 아침 국무회의에서 “세 모녀가 생활고로 자살하는 가슴이 아픈 사건이 일어났다” 고 말하며 기초수급자 신청을 했거나 관할 구청에서 알았다면 정부의 긴급복지지원 제도를 받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있는 복지제도도 활용하지 못하면 사실상 없는 제도나 마찬가지”라며 복지 사각지대를 줄이고 국민에 제도를 알리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또한 지난 달 임시국회에서 복지 3법이 처리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에 유감을 표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을 반박하는 바이다.



1. 기초생활수급, 긴급지원 신청 했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 송파 세 모녀는 모두 정부가 바라보기에 근로능력자이다. 어머니 박씨의 경우에는 61세로 근로가능 연령층이며, 불과 한 달 전 다치거나 소득이 단절된 경우 근로능력이 일상적으로 제약되는 상태로 보지 않는다. 첫째 딸의 경우 고혈압과 당뇨가 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만성질환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병원비 문제로 병원에 다니지 못했기 때문에 증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인정한다 할지라도 고혈압과 당뇨만으로 근로능력이 보지 않을 것이다. 둘째 딸의 경우 신용불량자라지만 이는 근로무능력사유가 되지 않는다. 부족한 생활비로 채무에 채무를 돌며 모욕당하고 낙담하고 불법적인 추심을 받는 동안 국가는 아무런 관심을 쏟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복지제도에 들어오려는 순간 이들에게는 ‘근로능력’ 이라는 짐이 생긴다. 이렇게 근로능력이 있는 세 모녀에게 국가가 정하는 ‘추정소득’은 최소 180만원이 될 것이다. 아무런 소득이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이들은 정부가 바라보기에 180만원의 소득을 가진 가족이었다.


◯ 긴급지원의 경우에는 (긴급복지지원법 2조) 1. 주소득자(主所得者)가 사망, 가출, 행방불명, 구금시설에 수용되는 등의 사유로 소득을 상실한 경우 2. 중한 질병 또는 부상을 당한 경우 3. 가구구성원으로부터 방임(放任) 또는 유기(遺棄)되거나 학대 등을 당한 경우 4. 가정폭력을 당하여 가구구성원과 함께 원만한 가정생활을 하기 곤란하거나 가구구성원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경우 5. 화재 등으로 인하여 거주하는 주택 또는 건물에서 생활하기 곤란하게 된 경우 6. 그 밖에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여 고시하는 사유 를 대상으로 한다. 이 중 세 모녀의 경우 2번 정도에 해당하겠으나 팔이 부러진 정도를 중한 부상으로 바라보긴 어려울 것이다. 가구 소득이 심대하게 낮을 경우 좀 더 확대 적용하도록 권유하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근로능력이 있는 가구원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취지는 모든 국민의 최저생계를 보장한다는데 있다. 최저생계는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이 이하의 생계비로 생활하는 모든 이들은 최저생계비를 보장 받아야 한다. 그러나 법 취지와 다르게 부양의무자기준과 근로능력, 재산의 소득 환산율 등을 통해 실제 소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원받지 못하는 이들, 불과 최저생계비의 120% 소득밖에 갖고 있지 않은 이들이 410만명에 육박한다. 수급자는 140만 명이 채 되지 않는 것을 고려해 볼 때 사각지대가 세배에 가까운 것이다. 즉, 우리나라의 공공부조는 마른 걸레를 쥐어짜듯, 빈곤의 마지막까지 밀려난 사람들에게만 겨우 작동하거나 그마저도 부실하다.


◯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전환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117만명의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한 사각지대를 흡수하기 위한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를 비롯해 근로능력 유무와 관계없는 최저생계비의 우선적 보장, 차상위 계층 및 전체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급여, 주거급여 확대 등이 요청된다.



2. 제도를 알리면 정말로 사각지대가 줄어드는가? 이벤트에 불과하다!

◯ 지난 2011년 5월, 서울 모 지역에서 화장실에 사는 삼남매가 발견되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충격적이다’ 라며 빠른 대응을 지시했다. 정부는 전국 일제조사를 실시하고, 취약계층 발굴을 위한 <찾아주세요! 알려주세요! 소중한 우리 이웃!> 이라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그러나 이는 당시 발굴된 이들에 대한 긴급지원에 그칠 뿐이었다. 2009년 157만명이던 수급자 숫자는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현재 135만명 수준까지 떨어졌다.



◯ 보건복지부는 이번 연이은 빈곤층 자살의 대책으로 전국 일제조사를 계획했다. 마치 ‘연례행사’ 처럼 일제조사를 지시하는 보건복지부는 이것이 일시적인 대책에 불과함을 본인들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는 결국, ‘발굴’이 아니라 정부의 ‘정책 의지’가 빈곤층 지원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일시적인 이벤트성 대책은 그렇지 않아도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복지공무원들을 이중, 삼중으로 고통받게 할 뿐만 아니라 빈곤층에게도 불안정한 대책에 불과할 뿐 빈곤문제 해결과는 동떨어져 있다. ‘빈곤종합대책’으로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위상을 고려할 때 필수적인 생계지원(최저생계비 보장)과 실제 자립가능한 안정적인 지원이 중요하다.


◯ ‘있는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이를 알리지 못한 복지공무원이 아니라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부정수급을 찾아내고 예산을 절감하라’고 지시한 대통령이 아닌가 우선 돌아봐야 할 것이다.



3. 복지 3법이 처리되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 박근혜대통령이 언급한 복지3법은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법, 장애인연금이다. 이는 복지3법이 아니라 복지파괴3법, 공약파괴 3법이다. 기초연금은 모든 어르신께 2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을 어긴 것 뿐 아니라, 국민연금과의 연계로 개악하려 하고 있다. 이는 전 국민의 노후보장을 통째로 불안정하게 만드는 시도다. 장애인연금은 장애등급제 폐지, 모든 장애인에게 장애인연금 2배 지급을 내걸었지만 이 역시 파기됐다. 장애등급제 폐지는 언급도 없고, 장애인연금 인상도 시늉에 그칠 뿐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도 문제가 심각하다. 현행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아무리 문제가 많다 한들, 없는 것 보다는 나을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전 국민에게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생계를 권리로서 보장한다’는 훌륭한 취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정부의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은 이를 해체하려 하고 있다. 최저생계비 개념을 없애고 빈곤문제에 대한 국가의 책임, 사회적 해결의 단초를 없애버리려 하고 있다. 급기야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제공하는 7개의 급여가 여러 부처의 소관으로 이관해, 각 급여의 선정기준과 보장수준을 각 부처 장관의 재량에 실질적으로 맡겨버리려고 하고 있다.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가? 이는 빈곤층의 생활을 더욱 불안정하게 할 것이고, 종합빈곤대책으로서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위상을 해체할 것이다.

◯ 만약 개정안이 통과되었다면 세 모녀는 지원받을 수 있었을 것인가? 정부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다양한 선정기준으로 더 많은 이들이 기초생활수급대상자가 된다고 하지만 이는 기존 제도를 쪼개 질 낮은 급여를 여러 명에게 흩뿌리는 것에 불과하다. 다음은 만약 정부가 제안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가 운영되었을 때에 대한 가정이다.


세 모녀는 개정법이 통과된다 할지라도 여전히 지원받지 못한다. 근로능력평가, 추정소득은 여전히 살아 있고, 그렇게 간주된 이들의 소득은 정부의 급여 선정 기준 이상이기 때문이다. 만약 어머니가 기존에 벌던 150만원의 돈이 가구의 유일한 소득으로 인정받는다고 <가정>해보자. 이럴 경우 세 모녀는 해산․장제 급여를 제외한 모든 급여 중 유일하게 주거급여 대상자가 될 것이다.


중위소득 43%를 기준으로 하겠다는 주거급여는 3인가구의 경우 155만원 정도의 선정기준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월세 50만원을 전부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서울시 기준 3인가구가 지원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은 24만원이다. 그런데 정부는 ‘자기부담금’ 이라는 항목을 신설했다. 155만원 미만 소득가구가 대상은 될 수 있지만 소득기준이 생계급여선(30%)을 넘기 때문에 자기부담금을 부담해야 한다. 송파세모녀의 자기부담금은 24만원에 육박한다. 즉, 세 모녀는 주거급여로 단 돈 1만원(최저지급액)을 지급받으며 ‘수급자 가구’로 분류된다는 것이 박근혜정부 맞춤형 복지 계획이다. 세 모녀가 지불해야 하는 월세는 50만원이지만 정부는 1만원을 지원한다.




1만원 짜리 주거급여 수급자, 빈곤층에 대한 정부의 지원인가 우롱인가?

◯ 사회시민노동단체, 수급당사자들은 꾸준히 이번 개정안이 ‘개악안’ 임을 알려왔다. 이번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은 ‘국민행복 맞춤형 복지’가 아니라 ‘예산 맞춤형 복지’, ‘정부와 기업의 입맛 맞춤형 복지’다. 우리는 이번 개정안이 사각지대 문제를 결코 해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제도를 심각하게 파괴한다는 것을 줄곧 알려왔다.


◯ 그 결과 지난 2월, 국회에서 해당 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 급기야 정부는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은 정부의 대표적인 복지 실천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지금까지 단 한차례의 법안 제출도, 정식 공청회도 개최하지 않았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법안만 소리 소문없이 발의되었을 뿐이다. 어떻게 전 국민의 빈곤문제를 다루는 법 개정을 준비하면서 이런 폐쇄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단 말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하루 속히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제대로 된’ 개정을 위한 논의에 참여하길 바란다.


◯ 매일같이 가난한 이들의 죽음 소식이 들려오는 오늘, 전 국민이 불안정한 사회안전망을 개탄하고 있다. 송파 세 모녀와 연이은 가난한 이들의 죽음은 한 가지 원인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일자리를 잃어 가난해지고, 가난하기 때문에 건강을 잃고, 건강을 잃어서 더 가난해져서 집을 잃으면 다시는 일자리를 가질 수 없어지곤 하는 복합적인 상황이 빈곤을 만든다. 이에 대해 정책을 구성하고 집행하는 책임자들이라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있는 제도를 잘 활용하라’고 지시하기 전에 현실을 보라. 과연 빈곤에 빠진 모든 국민들이 있는 제도에 대해서 무지해서 이용하지 못했겠는가. 임대아파트가 저렴하고 편하다는 것을 모든 국민이 알지만 임대아파트가 너무 적은 것이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과 복지부는 문제의 핵심을 외면하지 말고 제대로 풀어 나갈 자세를 보여주길 바란다. 지금이야 말로 빈곤문제 대한 중대한 전환을 모색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