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노점상 이덕인 열사 의문사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기자회견문

 

 

19951128일 겨울로 접어들 무렵, 한 시신이 인천 아암도 해변에서 발견되었다. 철거용역 등 1,500여 명의 공권력을 동원해 노점상 철거 행정집행을 하는 과정에서 실종되었던 이덕인 열사가 3일 만에 해변에 변사체로 떠오른 것이다. 발견 당시 이덕인 열사는 상의와 신발이 벗겨진 채 물속에 엎어져 있었으며, 마치 죄수처럼 두 손목이 밧줄에 묶여 있었다. 또한 시신의 얼굴과 팔 다리 등에 난 피멍과 상처만 보아도 누군가에 의해 타살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두 눈은 억울하다는 듯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당시 인천의 아암도 해변에서 장사하던 30여 명의 장애인을 포함한 노점상들은 구청의 노점 철거 집행에 항거하며 망루를 설치하고 고공농성을 전개했다. 망루 위의 농성자들은 활동이 자유롭지 못한 지체장애인들과 당뇨병 환자도 있었다. 그러나 철거용역 깡패들을 앞세운 공권력은 망루를 포위하고 농성자들에 대한 음식물과 식수는 물론 환자에 대한 의약품 공급까지 철저히 차단했다. 심지어 매서운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혹한의 추위 속에 소방차를 동원해 물대포를 쏘아댔다. 이 과정에서 외부와의 연락을 위해 경찰 통제선을 벗어나던 이덕인 열사가 의문의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열사의 원혼은 구천을 떠돌고 있다.

2002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덕인 열사 사건에 대해 대규모의 공권력 동원과 통제로 헌법상의 생명권을 위협하고, 신체의 자유, 행복추구권을 과도하게 침해하여, 공익에 비해 침해되는 사익이 현저히 큰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였으며, 국민기본권의 확립을 위해 항거하는 과정에서 사망에 이르렀다라는 요지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직접적인 사인과 관련해서는 이덕인 씨가 경찰에 폭행당한 후 실신 상태에서 물에 던져졌음을 뒷받침할 근거는 없다라는 이해할 수 없는 결론을 내렸다. 죽인 주체는 국가가 맞으나 당시 국가권력의 하명을 받아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경찰이 죽였는지는 모르겠다는 책임회피성 결론으로 철저한 진상규명은 멀어져 갔다.

더군다나 국가폭력에 의한 사망이라는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결론에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2008민주화운동명예회복보상심의위원회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사망으로 볼 수 없다는 불인정 결정을 내려 열사의 명예회복마저 내팽개쳐 버렸다.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두 번씩이나 버림받은 열사의 피맺힌 한을 풀기 위해 이기주 아버님은 오늘도 팔십노구의 몸을 이끌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열사의 부모님은 2008년 광우병 집회부터 지난해 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까지 빠지지 않고 참석해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한 노력했으며, 최근까지도 국회 앞 1인시위에 매일 참여했다. 지난 53일 열린 과거사법제정촉구기자회견장에서는 머리카락을 잘라내는 삭발식까지 동참했다.

 

열사의 소망은 그리 큰 것이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가난과 장애로 힘겨운 삶을 살아온 열사였지만,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도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평범한 삶을 사는 세상을 꿈꾸며 동료들과 함께한 것이다. 죽음이 닥쳐오는 줄 모르고 망루에 오르던 그 날도 열사는 공무원시험 볼 자격을 잃을까 걱정이 앞섰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무자비한 국가폭력은 열사의 작은 소망조차도 용인하지 않았으며, 그 억울한 죽음마저 은폐해버렸다.

 

최근 남북 정상이 만나 판문점 선언을 발표한 것은 평화를 바라는 온 세계인들이 환영할 일이었다. 70년 만에 한반도에 봄이 온 것이다. 하지만 봄이 왔으나 봄을 느끼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이덕인 열사와 유가족들, 그리고 노점상들과 장애인들이다. 이덕인 열사에 대한 진실 규명은 한 개인과 가족의 명예회복을 위해서가 아니다. 노점상들과 장애인들의 삶을 개선하는 일이며, 더 나아가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평등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장애인수용시설 즉각 폐지하고 노동권을 보장하라!

- 열사의 염원이다. 노점단속 중단하라!

- 열사의 뜻 이어받아 장애해방, 빈민해방 쟁취하자!

- 부모님의 소망이다. 국가는 죽음의 진실을 밝혀내라!

- 과거사법 제정으로 진상규명 명예회복 쟁취하자!

- 문재인 정부는 즉각 과거사법 제정 약속을 이행하라!

 

2018523

 

 

민주노점상전국연합,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 빈곤철폐를위한사회연대, 인권중심 사람, 인권운동+(더하기),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전국유족회 외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