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서울시는 을지로입구역 지하통로 폐쇄로 위기상황에 놓인 거리홈리스에 대한 지원대책을 신속히 마련하라.

 

서울메트로의 을지로입구역 지하통로는 많게는 150명에서 적게는 60여 명의 거리홈리스들이 20년 동안 삶을 의탁했던 공간이다. 그러나 지난 415, 을지로입구역 측이 지하철 운행이 종료되는 시점(41601)을 기준으로 외부로 나가는 4개의 통로 입구에 설치된 차단문을 내리면서 야간 보행통로를 폐쇄함에 따라, 그 공간에 머물고 있던 60여 명의 거리홈리스는 전부 역사 밖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이 같은 조치와 관련하여 을지로입구역 측은 지상 횡단보도 설치(2010.08.18.)로 보행통로 기능이 상실된 데다, “역사시설물 관리에 어려움이 있어 역사 폐쇄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조치시행 첫 날이던 415, 보행통로 폐쇄 현장에서 만난 을지로입구역 관계자(부역장 이은남)는 역내 노숙인 이동 상담센터, 식사를 제공하는 단체, 서울시 노숙인 정신건강팀에 상기 조치에 대한 통보와 더불어 지원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서울시 자활지원과에 폐쇄조치에 대하여 충분히 얘기했음을 강조하며, 겨울철 노숙인 보호대책기간(‘15. 11. 16 ~ ’16. 3. 15.)까지만 차단문 운영을 보류해줄 것을 요청한 서울시의 공문에도 불구하고, 늦겨울 추위에 거리홈리스들이 노출될 것을 우려한 역장의 판단 하에 본래 3월 예정이던 폐쇄 조치를 한 달 가량 연기하여 시행하는 것이라 강변했다. 실제로 서울시는 지난 225, ‘을지로입구역 노숙인 집중상담, 시설입소 지원을 주요 계획으로 내세우며 차단문 운영을 보류해줄 것을 서울메트로 측에 요청한 바 있으나(자활지원과-2519), 폐쇄 당일 현장에 있었던 거리홈리스 가운데 상당수는 폐쇄조치에 대하여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최근 어떠한 상담이나 지원도 경험해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거리홈리스의 특성 및 지원체계를 잘 모르는데다, 아무런 권한도, 관심도 없는 역 관계자조차 폐쇄로 인한 문제를 고민하며 나름의 조치를 취하고 있는 동안, 홈리스 지원의 주체이자 홈리스 권리보호에 앞장서야 할 서울시 및 해당 지자체와 관련 지원단체들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거리홈리스를 공공역사와 지하통로에서 제도적으로내쫓는 일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제는 최근 들어 이 같은 조치가 도처에서 더욱 강화된 형태로 나타나게 됨에 따라 거리홈리스가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서울의 대표적인 거리홈리스 밀집지역 가운데 하나인 서울역(1호선) 지하통로에서도 현재 철도안전법을 앞세워 지하철 보안관들이 거리홈리스를 강제로 내쫓는 일이 횡행하고 있다. 이렇게 쫓겨난 거리홈리스는 퇴거의 위협이 덜한 공간으로 몰릴 것이며, 이러할 경우 그 곳에서도 민원처리, 시설관리를 명목삼아 거리홈리스들을 쫓아낼 것임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공공장소에서 반복적으로 시행되는 강제퇴거 조치들이 거리홈리스들을 공공기관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공간으로 내몰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곧 거리홈리스를 복지지원이 미치지 않는 더 깊은 사각지대로 밀어 넣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기능이 상실된 지하통로의 폐쇄와 더불어 민원처리 및 시설관리의 필요성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민원처리, 시설관리의 필요성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위기상황에 직면한 사람들에 대한 지원과 개입이다. 공공역사와 지하통로는 주거를 상실한 수많은 거리홈리스가 생존을 위해 찾게 되는 대표적인 공간으로, 공공장소라는 특성 상, 많은 이들이 이용하기 때문에 온갖 범죄피해에 노출된 거리홈리스에게 상대적으로 안정감을 제공할 뿐 아니라, 긴급한 상황에 놓인 홈리스에게 적시에 개입할 수 있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을지로입구역과 같은 공공역사는 꾸준한 상담이 가능하여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계를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개인의 욕구를 파악함으로써 거리홈리스 개개인에게 필요한 지원을 가능케 하는 거의 유일한 기반이기도 하다. 이 같은 공간이 현재 민원처리, 시설관리를 이유로 사라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할 주체인 서울시는 근본적장기적인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사안에 대한 원론적인 입장만을 되풀이하며 지극히 단기적이고 소극적인 조처로 일관하고 있다. 대체 어떠한 대응책을 마련해 놓고 있는 것이기에 정책 대상들이 위기상황에 내몰리는 것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만 하고 있는 것인가? 훗날 이들이 어디에서 머무르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이 되었을 때, 홈리스 복지지원의 핵심주체인 서울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과연 무엇이 있겠는가?

 

한편, 우리는 이번 을지로입구역 폐쇄조치와 관련하여 또 다른 중요한 논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대다수의 공공역사와 지하통로에서 행해지고 있는 퇴거조치와 마찬가지로, 을지로입구역에서 벌어진 퇴거조치의 수행 주체는 지하철 보안관을 비롯한 역 관계자 및 그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었다. 전술한 바 있듯, 이들 대다수는 거리홈리스의 특성과 홈리스 지원체계에 대해 무지할 뿐 아니라, 퇴거조치가 결과할 문제들에 관하여 판단할 능력도 없고 그러할 권한도 없는 이들이다. 실제로 415일 을지로입구역 폐쇄과정에서 홈리스행동 활동가들과 마주한 역 관계자는 퇴거 조치가 행정적인 것이며, 대책과 지원에 관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당시 현장에서 한 거리홈리스 할머니가 끝까지 퇴거에 불응하자 부역장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역 관계자들과 대치하고 있던 그녀를 향해 빨리 나가 달라, 다른 일 하러 가야한다라는 말만 반복할 뿐 위기상황에 놓인 고령의 홈리스를 위한 그 어떤 개입조치도 시행하지 않았다. 경찰은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까봐 불안해하는 고령의 여성 홈리스를 단지 역에서 나가야 하는데 나가지 않고 버티는 사람으로만 간주했다. 당시, 이 같은 상황과 관련한 업무 지침이 존재하는지를 묻는 활동가의 질문에 해당 경찰관은 업무 소관 자체가 다르다, 지원 및 대책에 관한 부분은 구청 사회복지사나 서울시에 문의하라고 답변했다. 요컨대, 당시 현장에서 공무를 수행하던 이들은 하나같이 거리홈리스를 역사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는 행정상의 임무에만 충실한 공무수행자였을 뿐, 그러한 공무수행이 초래할 문제들 및 그 결과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장 분위기 속에서 위기상황에 처하게 된 거리홈리스는 대체 누구에게 지원을 요청해야 하는 것인가? 공공역사지하통로에서의 퇴거조치가 점증하고 있는 현실에서, 홈리스 상태에 대한 몰이해 속에 오직 퇴거라는 행정적 조처에만 몰두하는 공무수행자들의 문제를 간과할 경우 퇴거과정에서의 안전사고 관리는 물론, 거리홈리스 지원체계의 확립 역시 더욱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이미 역 지하통로의 폐쇄는 이루어졌고, 시간이 흐를수록 위기에 놓인 거리홈리스에 대한 적절한 지원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지금이라도 서울시는 을지로입구역 지하통로 폐쇄에 따른 후속 지원대책을 신속히 마련해야만 한다. 당장 역 주변을 떠도는 거리홈리스에게 임시주거지원 등의 복지를 연계함으로써, 역사에서 쫓겨난 이들이 더 극한의 환경으로 내몰리는 사태를 반드시 막아야 할 것이다.

뿐 아니라, 서울시는 하부지자체인 구청은 물론, 시민의 안전을 보장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경찰, 공공역사와 지하통로를 운영관리하는 서울메트로 등 다양한 공공부문 주체들이 위기상황에 처한 거리홈리스에게 적절한 보호와 지원을 제공연계할 수 있도록 관련 지침서를 마련하고, 이를 토대로 앞으로 계속될 퇴거 상황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지원시스템을 구축해나가야 할 것이다.

 

2016. 4. 27.

홈리스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