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주거가 곧 안전한 주거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한다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로 일곱 명의 생명을 잃은 지 49일이 지났다. 이 날은 죽은 자들은 내세로 떠나고, 살아남은 자들은 슬픔을 거두고 탈상을 하는 시기라고 한다. 그러나 49일간 우리의 현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피해생존자들의 회복은 아직도 요원하다
참사 발생 직후 국토부, 행안부, 복지부 등 관련 부처와 종로구는 각각 보도자료를 내고 저마다의 지원책을 발표하였다. 화재로 거처를 잃은 피해생존자들에 대해 단계별 주거를 제공하고,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등 피해자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32명의 피해생존자 중 임대주택에 입주한 이들은 열 명 남짓에 불과하다. 국토부의 발표와 달리 종로구는 최장 20년 입주 가능한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을 안내하지 않은 채, 6개월을 기한으로 하는 ‘이재민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만을 물었기 때문이다. 어느 누가 6개월 후 반납해야 하는 임대주택에 들어가리라 작심하고, 그에 맞춰 세간을 장만하겠는가?
재발방지 대책은 아무것도 마련되지 않았다
국일 고시원 참사를 만든 근본원인은 ‘화재’가 아니라, 이처럼 열악한 곳에 사람이 살도록 용인했던 우리의 주거 현실이다. 화재로 인한 사망처럼 가시적이지 않을 뿐, 바람도 빛도 스미지 않는 네모난 독방에서 가난한 이들은 여전히 병들고 죽어가고 있다. 오직 화재라는 현상에만 매몰돼 소방·안전 대책만 강구한다면 비주택의 주거수준은 나아질 수 없다.
안전과 주거의 사각지대는 공존할 수밖에 없다. 현행법은 오래 된 고시원 등 다중생활시설에 대해서는 안전시설 기준이나 건축기준을 지키지 않도록 허용하기 때문이다. 바깥으로 난 창 하나 없는 방에서 탁한 공기만 마시며 살던 이들이 화재 시 유독 가스를 피할 수도, 탈출할 수도 없었던 현실이 이를 보여준다. 지난 6일과 18일, 안전시설 설치를 소급적용하도록 하는 <다중이용업소법 개정안>과 준주택의 건축기준을 법률에 명시하도록 한 <건축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되었을 뿐, 그 진로를 기약할 수 없는 상태다.
비주택에 대한 최저주거기준 도입하라
사람 사는 곳이라면 그곳이 주택이든 그렇지 않든 최저주거기준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다만, 현행 최저주거기준이 구체적이지 않고 비주택에 바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별도의 최저주거기준은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미,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이런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현재와 같이 비주택에 대한 정책적 방임을 멈추기 위해서는 신속히 비주택에 대한 최저주거기준을 설정하고, 이에 도달할 수 있는 재정지원과 관리감독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적절한 주거를 보장받는 것이 인간의 권리인 까닭은 머물 곳 없는 삶은 위태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일고시원 화재 희생자들의 49재를 맞는 오늘에 닿기까지 우리사회는 집이 없어, 집답지 못한 곳에 살아 생기는 죽음을 막을 장치를 아무것도 구비하지 못했다. 삶의 터전이어야 할 집이 죽음의 이유가 되어야 하는 비극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희생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게, 희생자들의 넋이 더 이상 좁고 답답한 고시원에 매이지 않도록, 오늘을 기점으로 비주택 거주자의 주거권을 되찾는 싸움에 나설 것이다.
피해자 지원대책 즉각 마련하라!
비주택 거주민의 안전한 삶 보장하라!
주거는 인권이다, 모두의 주거권을 보장하라!
2018년 12월 27일
종로 국일고시원 화재 희생자 49재 기자회견 참가자 일동